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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La folie (1)

 

 

 

 

 

- La folie : 미친 짓

 

 

 파리에 와서 불법의 연속을 저지르고 있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던 불법은 나쁜 것이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우선 나의 파리 체류는 시작부터가 불법이었다. ‘Sous-location’이라고, 일명 ‘재임대’라는 건데 세입자가 집을 비운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잠깐 세를 놓는 방식을 말한다. 아마 영어권에서는 'sublet'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식으로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만이 임대를 놓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재임대는 불법이다. 그러나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워낙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주택을 찾을 수가 없을 때에는 재임대로라도 임시 거주지를 구해야 한다. 왜 굳이 재임대와 파리 주거 사정에 대한 운을 이렇게 길게 떼냐 하면, 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임시숙소가 재임대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나는 에어비앤비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재임대 주택을 구했다. 어차피 안면을 트고 하는 계약이 아니면 집 계약을 할 수 없다고 프랑스 법에 분명히 명시된 데다가 집들이 워낙 오래 되서 직접 보아야 하기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알자스에 사는 친구 쥐스틴이 파리에 왔고, 이어서 독일인 친구 티모가 파리에 놀러온다고 한 날, 발드릭이 내게 뭔가를 떠넘겼다.

 

“이봐, 쥐스틴이 티모라는 독일 녀석이랑 같이 우리 집에서 묵겠다는데 나 그 때 프랑스에 없어. 너랑 셋이 아는 사이라는데 너네 집에서 자는 건 어때?”

 

 나야 딱히 나쁠 건 없었다. 쥐스틴이나 티모나 내 친구고, 또 안 본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파리에 온다니 오히려 반갑기도 했고.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지금의 내 주거지가 임시 주거지인데다가, 재임대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내 방에 재워줄 수 없다고 방의 원래 임대자가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망설이고 있자 발드릭이 씨익 웃으면서 손가락 깍지를 풀고 하나하나 집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이. 너 불안해하는 건 이해하겠는데...쥐스틴은 프랑스인이야. 네가 한국인을 재워준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쥐스틴 프랑스인인데 뭘 걱정해? 독일인은 독일인이고, 집주인은 멀리 있어. 비밀만 지키면 되는 거야. 그리고 너는 침대에서 자고, 둘은 확 바닥으로 내쫓아버려.

 

 발드릭의 새파란 눈동자에 장난기와 진심이 한꺼번에 맺히는 것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2012년 이었던가...아마 그 때 쥐스틴과 티모를 처음 만났을 것이다. 둘 다 우리 학교의 교환학생이었고, 쥐스틴은 프랑스인이고 티모는 독일인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학기가 되는 것이 짜증나기만 했던 고학번 이었다. 둘 다 친구들의 친구들이라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그 때 신나게 놀다가 웃다가 술 마시다가 페이스북으로 서로 놀려대던 기억밖에 없다. 학기가 끝나고 쥐스틴과 티모는 각자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고 나는 휴학을 했다. 그 이후론 셋 다 졸업을 하고, 나는 백수와 프리랜서를 전전하다가 대학원에 입학해서 프랑스에 오게 되었고, 쥐스틴은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일을 찾고 있고, 티모는 취직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파리에서. 알자스에 있는 쥐스틴이 잠시 구직 관련 일도 해결할 겸 파리에 온다고 했는데, 타이밍 좋게 티모 역시 휴가라서 파리로 놀러온다고 한 것이다. 결국 쥐스틴이 발드릭네 집에서 머물다가 티모가 오면 우리 집에서 셋이 같이 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고, 나는 집 문제와 학교 문제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두 사람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기다리는 상태로 3일 가량을 보낸 것 같다.

허나 걱정을 하던 말던, 힘이 들던 말던, 일단 시간은 가는 법이고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법이다. 신나게 금요일 아침의 잠을 즐기고 있다가 티모에게서 전화를 받은 순간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나 도착했어!! 지금 너가 말한 그 출구 앞이야.”

 

 

 영어를 해도 완연하게 드러나는 악센트와 독특한 r,s,t 발음에 낮게 깔리는 목소리. 분명히 티모였다. 혼비백산 하면서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티모를 데리러 나갔다. 그리고 프랑스인들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동시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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