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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La folie (3)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내가 관광지 같은 곳을 갈 리가 없었을 것이다. 본래 관광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성격도 아니고, 사람 많은 곳을 그다지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파리에 도착해서 에펠탑이나 개선문을 보았을 때도 큰 감흥은 없었다. 파리에 온 것은 물론 좋았지만, 그보다는 앞으로의 생활과 학업에 대한 걱정이 더 컸으니까. 무엇보다도 집이 안구해져서 매번 뒤척이며 혼자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던 스트레스 최고조의 상황이었던지라 관광을 하거나 돌아다닐 여력을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오니까 상황이 바뀌었다. 일단은 친구들이 왔으니까 놀아야 되고, 무엇보다 파리가 처음인 녀석이 ‘여행’을 왔으니까, 그것도 신입사원이 되어서 받은 첫 휴가로 파리를 왔으니까 결국 녀석을 위해 관광지를 가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 찾기와 각종 행정 잡무를 내던지고 3박 4일 동안 온 몸과 정신을 불살라 놀아버렸다. 그리고 ‘진부하고 상투적이다’고 생각했던 관광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아, 파리에 이런 곳도 있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동시에 파리의 여러 가지 얼굴들과 속살들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인상을 담게 되었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가지 않았을 곳들과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못할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쥐스틴과 티모가 오지 않았다면 이런거 저런거 다 귀찮아하는 내 성격에 노트르담 성당이나 생미셸, 라파예트 같은 관광지를 돌아다녔을 리가 없고, 또 겁이 많은 내 성격이 두 친구가 없이 혼자서 몽마르트나 피갈 같은 곳을 갔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저 집과 학교만 돌아다니며 그 작은 칸막이들을 파리라고만 생각했겠지. 방구석 폐인인 나라는 사람을 방에서 끌어내 파리의 여러가지 얼굴을 보여주고 '자, 이게 앞으로 네가 살 곳이야'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힘을 불어넣어 준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렇게 된 김에 나에게 새로운 경험과 의미깊은 시간을 준 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해보겠다. 우선 쥐스틴은 알자스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다. 쥐스틴이 말하길 알자스 사람들은 본인들을 프랑스 인이라고도, 독일인이라고도 하지 않고 단지 알자스 인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아마 서로 다른 두 문화의 경계선에 걸쳐 계속 국경이 바뀌는 불안한 삶을 살았어야 하는 알자스 사람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쥐스틴은 계속 시골에서만 살다가 성인이 되어서 인턴을 하러 처음 파리에 왔다. 파리에 도착하는 순간 매료되어서 파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파리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자주 파리로 올라온다고 한다. 파리생활이 녹록치 않고, 직업을 구하는 것이 힘들기는 해도 다시 파리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이곳에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녀의 파리는 힘을 들인 만큼 더 사랑하고 끈끈하게 유대감을 가지게 되는 무한한 애정과 복합적인 감정의 결정체이다.

 

 티모는 독일 서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출신이다. 고향은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의 경계선에 있는 나시히(Nassig)라는 곳인데, ‘Heimatsstadt’라는 말 대신에 ‘Heimatsdorf’라는 말을 쓴 것으로 미루어 보아 굉장히 작은 마을일 것이다. (독일어로 Stadt는 일정 인구 규모 이상의 도시를 가리키고, Dorf는 그보다 훨씬 작은 시골 마을을 지칭한다.) 그리고 지금은 슈투트가르트 인근의 교외도시인 루드비히스부르크(Luwigsburg)에 살면서 슈투트가르트의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주도라고는 해도 슈투트가르트는 파리에 비하면 상당히 작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도 아닌 유럽인인 티모가 파리에 처음 와서 입을 다물지 못하며 감탄을 하는 것을 보니 왜 마르크스가 굳이 파리로 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일단은 이곳을 다시 오는 것이 티모의 소원이다. 아마 노트르담 성당 앞의 소원을 빌어준다는 별 위에 서서 그가 빈 소원은 바로 파리로 되돌아오는 것 이었을 것이다.

 

 쥐스틴에게 있어 파리는 동경의 대상이자 무한한 애정의 대상이다. 비록 지금은 파리에 살지 않을 지라도 누구보다도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의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파리의 어두운 이면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가 가진 여러 가지 얼굴들에 애정을 갖고 있다. 허나 청년 실업률이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파리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티모에게 있어 파리는 신세계이다. 시골에 가까운 중소도시 위주로 이루어진 독일이란 나라의 성격상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그저 환상적인 판타지이다. 파리 역시 예외는 아닌지라 단번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슈투트가르트나 루드비히스부르크에는 없는 화려한 밤의 풍경과 사람으로 가득 찬 시내는 경이의 대상이다.

 

 나에게 있어 파리는 아직까진 시험의 대상이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세련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까다롭다. 또한 여전히 파리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즐거움과 고단함이 마치 지층의 단면처럼 교차되어 겹겹이 쌓여가고 있다.

 

 

 

 

 

 

 쥐스틴의 파리, 티모의 파리, 그리고 나의 파리는 다 다르다. 그렇게 다 각자의 파리를 기억에 안고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정답은 없다. 단지 기억이 있고, 기억속의 장소와 시간과 기억을 함께 한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 기억에 드리워진 감정이 시간에 따라 어떤 색으로 변하는가는 전적으로 앞으로의 인생에 달려있겠지. 아직은 희미한 밑색만 덧씌워진 나의 파리는 앞으로 어떤 색으로 변해갈까? 과연 나는 이곳에 적응할 수 있을까? 더불어 그 때에도 사랑하는 쥐스틴과 티모, 발드릭과 함께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저 쌀쌀해지는 공기에 배어나오는 도시의 회색이 얼굴에 묻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이다.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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