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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Rue Mouffetard

 

 

 

 

 파리 5구의 지하철 역 ‘까르디날 레모완(Cardinal Lemoine, 10호선)’을 나와 언덕을 넘어가면 ‘무프타흐(Rue Mouffetard)’ 라는 거리가 있다. 까르디날 레모완은 전공 전문 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가는 편인데, 어느 날 전공 공부를 하다 지겨워서 뛰쳐나와 아무 생각 없이 언덕을 오르다가 이 거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아주 지극한 우연의 찰나에 마주친 작은 거리이지만 활기차고 분위기 있어서 매료되었는데, 언덕을 넘어 이 거리 끝을 지나 직진을 하면 새로 이사 온 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에펠탑 인근이나 샹젤리제 같이 북적거리고 화려한 거리는 아니지만, 파리 시민들의 실제 삶이 녹아있는 거리라서 상당히 좋아한다. 예쁜 기념품과 소품을 파는 가게도 있지만, 이 거리의 주를 이루는 것은 다양한 식료품과 싱싱한 야채를 파는 시장이다. 일요일에도 일찍 문을 여는 이 시장은 이 인근 사람들의 생활이 녹아있다. 실제로 이 거리에는 관광객도 많지만, 장바구니와 수레를 한쪽 손에 끼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훨씬 많다.

 

 서울로 치면 어느 거리가 이곳에 해당할까? 홍대는 오히려 대학가가 몰려있는 레퓌블리끄(République)나 학생들이 많은 바스티유(Bastille), 클뤼니 라 소르본(Cluny-La Sorbonne)같은 곳에 더 가까울 것 같고, 삼청동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르다. 이곳은 관광지 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파리에 ‘생활’을 하는 생활인들의 흔적이 굉장히 짙게 묻어나고, 실제로 그들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생활 용품들이나 식재료들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 워낙에 외식비용이 비싼 파리이긴 하지만, 이곳의 경우 오페라나 샹젤리제, 그랑불바르 등지의 레스토랑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고 음식도 괜찮다. 그리고 곳곳에는 테이크 아웃해서 먹을 수 있는 저렴한 먹거리들도 꽤 많고, 역사와 철학, 문학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작지만 알찬 서점도 있다. 관광객들보다는 파리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한 번 쯤은 가볼만 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화려한 파리의 겉모습을 보여주는 오페라나 오스만 거리, 그랑불바르 같은 곳들보다도 훨씬 더 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근사한 명품과 쿠튀르 제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공주들만 드나들 것 같은 환상의 도시 같은 파리의 단면이 아니라, 정말로 파리에서 삶을 꾸려가면서 동시에 파리의 활기를 불어넣는 진짜 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근대 이후로 파리라는 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의 중심이자 문화의 수도이자 도시들의 여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수의 타고난 자가 아닌 다수의 시민들이 더 나은 삶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면서 투쟁한 자유의 심장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은,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태어날 때부터 입에 금수저를 물고 나온 소수들만 누릴 수 있는 것 이었다. 그것들을 누리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하고 싸워야 했으며, 셀 수 없는 피를 흘리고 나서야 겨우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파리의 시민들이 있었다.

 

 파리는 근대의 어머니인 도시이다. 근대의 빛과 어둠을 모두 한꺼번에 품고 있다 세상에 내보낸 도시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발자크를 읽으면서 자본주의의 논리를 깨우쳤고, 전근대와 근대를 통틀어 모든 부유층들이 파리를 동경하고 파리를 통해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려 했으며, 한편으로는 불평등한 체제와 열악한 노동, 제국주의, 인종주의 등 근대의 추악한 병리 현상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동시에 이와 같은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 피를 흘려 근대의 빛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 평등, 박애의 인권을 쟁취하여 전 세계로 심어나가게 한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은 방돔에 앉아 부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파리의 곳곳에서 오늘도 힘차게 그들의 삶을 이어나가는 시민들이다. 무프타흐 거리는 그런 그들의 삶과 일상이 녹아있다. 환상을 넘어 진짜 파리의 가치를 보여주는 얼굴들을 만나고 싶다면,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릴 수 있게 피를 흘려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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