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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Carnavalet

 어떤 날은 겨울의 파리답지 않게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날씨가 맑다. 창문을 관통하여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본 순간 우울하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긴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했다고 인식하기도 전에 어느 새 난 지하철 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내린 곳은 바스티유(Bastille) 광장이었다. 바스티유는 파리의 중심부인 마레 지구와도 가까운데다 주변에 학교가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라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더불어 그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이기도 하고, 시위를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시위대가 모이는 광장이기도 한 지라 자유의 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바스티유를 상당히 좋아한다. 물론 바스티유 광장과 거리가 자아내는 생기에 매료되기도 했고. 덧붙이자면, 독일이나 파리 근교의 조용한 고급주택촌보다 이런 곳이 좋은 것으로 보아 ‘아직 내가 젊긴 젊군!’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외출을 나온 목적은 딱히 없었다. 그냥 바스티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기분 전환이나 하자는 생각 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처 없이 거리를 걷다가 전부터 계속 가고 싶었던 박물관과 마주쳤을 때의 기쁨은 나름 크다. 파리 역사박물관, 일명 ‘까르나발레(Carnavalet)’는 말 그대로 파리의 역사를 전시해놓은 박물관이다. 이제 갓 중세의 어둠에서 벗어나 계몽주의의 싹을 틔우는 16세기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파리에 이르기까지 파리가 어떠한 변천사를 거치면서 도시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는 지를 알려준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사박물관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규모는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있다. 원래는 ‘오뗄 카르나발레(Hôtel Carnavalet)’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던 박물관 건물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16세기 귀족의 대저택이었다. 이제 겨울에 들어서서 인지 여름과 같이 화려한 맛은 없는 정원이었지만 건물 자체가 풍기는 오래된 역사의 아우라에 편안함을 느꼈다. 루브르처럼 장엄하면서 근사하게 압도당하는 느낌은 없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풍기는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한 순간에 매료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한 화가나 건축가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어도, 내부를 차분하게 둘러보다 보면 왜 파리가 도시의 여왕이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다. 같은 공간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고상함을 풍기지만, 좁은 통로와 통로 사이에서 인간미를 느끼게 되는 기묘한 대립 역시 사람을 잡아끈다. 더불어 앤티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근대 도시 파리의 속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전시품들도 은은하게 마음을 끈다. 조만간 다시 한 번 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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