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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 : 살다/彿國記

어쨌건 총보단 펜이다







 요즘 유럽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극우 정당으로 인해 난리이다. 경제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극우가 득세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위험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중인지라 여러모로 심란하다.


 사실 유럽의 극우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에 있을 때도 상당히 많이 들었다. 특히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창시자 장 마리 르펜의 손녀인 마리옹 마레샬 르펜이 22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어 의회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 말이다. 허나 이것을 멀리서 간접적으로 듣거나 보는 것과 달리, 이 상황이 실제 내가 처한 생활환경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휴가를 갔다 오자마자 벌어진 일들이다. 12월 29까지 나는 쾰른에서 머물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방학을 만끽했다. 웅장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멋이 돋보이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밤이 되면 라인 강에 반사되는 야경이 마치 사파이어처럼 눈에 각인 되던 아름다운 도시였다. 헌데 내가 휴가를 끝내고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이 도시의 심장부인 대성당 앞에서 PEGIDA의 시위가 열린 것이다! PEGIDA는 Patriotische Europaë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의 약자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서구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유럽 애국자들의 모임’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반이슬람과 반이민을 표어로 내건 극우 단체로 최근 독일에서 그 세를 확장해가는 추세인지라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이 단체가 내가 독일에서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드레스덴을 시작으로 해서 함부르크, 베를린, 뮌헨, 슈투트가르트, 쾰른 등 주요 대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의 숫자보다, 이들에 반대하여 ‘관용과 다양성’을 내건 사람들의 대응집회가 훨씬 규모가 컸다는 점이다. 쾰른의 경우는 PEGIDA 지지자들은 250여명 정도가 모였지만 이들을 배격하는 반대 집회엔 2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슈투트가르트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더불어 국수주의와 불관용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쾰른 대주교가 이들을 배격하고 반대 시위자들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대성당을 불을 모두 꺼버렸고, 이어서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를 비롯한 기업들과 공공기관들 역시 소등에 동참했다. 이는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직까지는 이에 반대하는 관용과 다양성 존중의 목소리가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뉴스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지금 파리는 충격과 슬픔에 잠겨있다. 백주대낮에 시내 중심가에서 총격 테러가 일어났으니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총격 테러의 사유도 뭔가 거창하고 그럴싸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이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참혹하게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 사실 이번에 테러를 당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가 다소 원색적인 방식으로 풍자를 하는 잡지이기는 하다. 이슬람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근본주의자나 극우들 역시 아주 통렬하고 수위 높게 풍자하던 잡지이기도 했고, 그 때문에 독자층이 한정된 지라 여러 차례 폐간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잡지가 유명해지고, 또 오늘의 테러 사태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슬퍼하는 이유는 바로 ‘자유’와 ‘평화’라는 이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사유라 해도 폭력으로 남을 해쳐서는 안 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저 ‘이슬람을 모독해서 기분 나쁘다’라는 이유만으로 테러를 행사한 것은 단순한 폭력 테러를 넘어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에 대해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는 정신적 폭력이기도 한 것이다.


 프랑스는 생각과 사상의 자유를 굉장히 중요시 하는 나라다. 당연하다. 프랑스 혁명의 주요 골자 이념 중 하나이고, 또 자유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만큼 그 소중함을 처절하게 각인하고 있는 나라인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공공기관의 크리스마스 장식물 설치나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특정 종교의 상징물을 공공에게 내보임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상을 구속하기 때문에 기독교든 이슬람교이든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사실 난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라는 주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유의 선정적인 표현과 과장법이 그다지 내게 와닿지도 않고 또 거북하기도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프랑스 내에서도 그다지 인기있는 매체는 아니었고.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의 생각과는 다르고 또 다소 저질스러운 방식일지라도,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는 한 그들의 표현의 자유 역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바로 폭력을 자행하는 행위야말로 진짜 야만이다. 


 아무튼 요 며칠 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유럽의 극우 세력이 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되고, 한편으로는 이슬람 무장 세력들이 언제 또 다시 테러를 자행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감도 든다. 기껏 파리에 왔더니만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당연히 든다. 다행인 것은 일단 테러는 모두 제압되고 범인들은 사살되었다는 것이고, 안 다행인 것은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과 범인들이 모두 테러단체와 연결된 ‘프랑스 태생’의 이민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모두 프랑스 태생에 프랑스식 교육을 받고 자란 프랑스 시민권자라는 것은, 이번 사건들이 단순히 중동의 정치적 상황과 연계된 테러가 아니라 프랑스 사회 내부에서 곪고 있는 문제들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 모두 이민자 인구가 상당히 많은 나라인데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던 시기에는 이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아무래도 여러모로 부담이 늘어나는 데다 사람들의 불안과 증오가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 표출되면서 각종 문제들이 표면화되고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령화된 사회에선 이민자들이 없으면 경제의 기본적 하부 체계 자체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게 되는 것이다.


 관용과 통합이냐, 혹은 반이민 정책과 배척이냐. 유럽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미국 발 금융위기나 과격 이슬람 테러 세력의 성장 등과 같은 요인들이 유럽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면서 기존의 유럽이 지니고 있던 관용의 정신과 시민사회의 유지에 대해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이 종결된 지 벌써 8세기 가까이 흘렀고,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종결된 지는 3세기가 넘었다. 이젠 종교보단 과학 문명이 더 우위를 점하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종교 극단주의와 광신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먹고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인종과 문화의 차이는 인류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쪼록 이번 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에게 명복을 표하고, 더 이상은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자유를 박탈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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