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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로방/20150614] 시간을 거스르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매뉴얼 파리 근교의 샹파뉴 가는 길목에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작은 마을이 있다. 바로 프로방(Provins), 12세기의 중세 성채와 마을의 모습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는데다 중세부터 내려온 지역 특산품이 여전히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중세의 모습과 문화가 잘 보존된 마을 특성을 살려 주기적으로 계절마다 축제가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여름에 열리는 프로방 중세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지난 3월, 트루아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만난 여학생의 추천으로 우연히 알게 된 마을이라 언젠가 한번 가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6월에 32번째 중세 축제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굳혔다. 프로방은 행정적으로는 일 드 프랑스.. 더보기
[도빌-트루빌/20150529-20150530]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날 (2) 다음 날, 언제 그렇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냐는 듯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태양은 환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치 어제의 비바람은 없었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쉽게 꼭 떠나는 날만 날씨가 좋냐는 생각이 들어 서운할 만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래도 떠나기 전에 맑은 하늘의 도빌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같은 장소라도 날씨에 따라 인상이 확 바뀐다. 첫날의 도빌이 비바람을 쏟아내며 회색과 청색이 뒤섞인 우울한 우수를 자아내는 도시였다면, 떠나는 날의 도빌은 태양과 바다를 끼고 빛나는 새하얀 보석 같은 휴양지였다. 첫날에는 그렇게 우중충하게 각이 져 보이던 도빌 시내의 건물들 역시 태양빛을 받으니까 평화로운 동화마을처럼 보였다. 날씨라고 하는.. 더보기
[도빌/20150529-20150530]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날 (1)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노르망디이다. 프로방스나 랑그도끄처럼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해안은 아니지만, 차갑고 거친 것 같은 모습 뒤에 숨겨진 우아함과 정갈함이 매력적인 바다이다. 그 중에서도 도빌은 인근의 옹플뢰르, 에트르타와 함께 ‘노르망디의 3대 보석’이라고 일컬어지는 휴양 도시이다. 파리와 가까운지라 파리지앵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닷가 도시이기도 한데, 특히 영화제와 승마가 유명한 고급 휴양지이다. 파리를 떠나 도빌로 향할 때 나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물론 2월 달에 프랑크푸르트와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때의 나도 학기 말 슬럼프에 허덕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피곤함과 어지러움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2월 달의 내가 적응기를 겨우 넘긴 상태에서 오는 정체기에 빠.. 더보기
환상 타파 한동안 바빠서 파리 시내를 못나갔다가 오랜만에 시내를 나갔다. 소르본 근처에 마침 볼 일이 있어서, 볼 일도 볼 겸 간만에 산책도 하고 시내 구경도 하자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나가자마자 바로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온도는 높은데 낮게 습기가 깔린 무거운 날씨는 둘째 치고, 일단 어마어마한 인파에 치여 한 순간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아직 6월이지만 벌써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파리 시내가 평소보다 더 북적인다. 6월인데 벌써 이러니 7월, 8월 되면 얼마나 붐빌 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휴가철에는 교통 및 운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휴가를 가서 대중교통 운행 횟수도 현저히 줄어드는데, 잔뜩 불어난 관광객으로 인해 대중교통의 밀도는 평소의 배가 된다. 이쯤 되면 상상이 가질 않는 게 아니라, 상상을.. 더보기
틈새의 묘미를 발견한다는 것 생애 첫 장기 여행을 마치고 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논문! 프랑스는 석사 1년차에도 논문을 써야 한다. 당연히 학위 논문은 아니고, 본격적인 학위 논문을 쓰기 이전에 자신의 연구 주제를 구체화하고 석사 1차를 무사히 마쳤음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공부 자체는 싫어하지 않고 나름대로 즐기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외국어로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이 녹록치는 않은 지라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사실 봄 휴가 때 다들 파리에 남아서 논문을 쓰는 분위기였지만, 이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도 딱히 뭐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결국 나는 기차표를 끊고 훌쩍 휴가를 떠났다. 써야 하는 논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파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딱히 두렵다.. 더보기
무엇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잠깐의 잡소리 절박함이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원 중 하나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 결국엔 가장 급한 사람이 가장 열심히 임하고, 그로인해 가장 좋은 결과를 내게 되니까. 옛 말에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게 관한 이야기는 아닌것이다. 하지만 절박함에 모든 것을 걸면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두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개인의 선택이나 가치관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 모두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듯이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 방향 설정의 자유가 있는 것이니까….더불어 이는 한 행위를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운을 길게 떼는 이유는 내가 휴가를 앞두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보기
[몽펠리에/20150402] 태양과 바람, 그리고 예술 지난주 내내 파리와 프랑스 중부, 북부 지방은 흐린 하늘을 유지했다. 서늘한 날씨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내 앉아서 형광등 빛만 쬐다 보니 태양이 간절해졌다. 썬크림을 일일이 챙겨 바르지 않아도 돼서 귀찮음은 줄어들었지만, 그 보다도 일단 비타민 D가 부족해서 뼈가 너무 연해지는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햇빛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강행한 여행의 목적지는 바로 남프랑스, 랑그도크 루시용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몽펠리에(Montpellier)’였다. 몽펠리에는 남프랑스에선 큰 도시에 속하고, 랑그도크 루시용 주의 상업 및 행정 중심지 이지만 사실 파리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인구 20만의 소도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그저 그런 프랑스의 지방 도시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지만.. 더보기
[르아브르/20150327] 가장 부드러운 색 회색, 그리고 가장 포근한 푸른색 음산하고 무겁지만 아름다운 루앙을 뒤로 하고 내가 간 곳은 르아브르(Le Havre)였다. 사실 원래는 노르망디의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작은 어촌에서 하루를 다 보내기는 뭔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 만에 두 도시를 당일치기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물론 이는 내가 루앙에서 르 아브르로 가는 기차를 놓침으로써 장렬하게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목적인 ‘바다 보기’는 이루었으므로 아쉽진 않다. 단지 생각보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노르망디 바다의 야경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2차 세계대전 때 거의 다 파괴되고 재건한 도시인지라 확실히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외에는 산업도시인지라 별로 볼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 더보기
[루앙/20150327] 음산하지만 아름다운 마력이 있는 도시, 노르망디의 잿빛 보석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를레앙을 다녀오고 나서 바로 루앙을 다녀오게 되었다. 잔 다르크가 승리를 거두고 성녀로 추앙받게 된 전환점을 만든 곳이 오를레앙이라면, 루앙은 잔 다르크가 부르고뉴 파의 음모로 인해 감금당하다 화형당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순수하고 우아한 처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오를레앙과는 달리 루앙은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도시라는 첫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지난 금요일은 날씨도 흐릿해서 더더욱 음침하게 다가왔다.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첨탑을 자랑하는 루앙의 대성당은 우울한 우수를 주는 독일의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고딕의 웅장함이 느껴지지만 어딘가 모르게 으스스함이 감돈다. 마치 내 머리 꼭대기를 내려다보며 음산한 미소를 짓는 중세의 수사가 떠올랐다. 루앙은 오랫동안 노르망디의 수도.. 더보기
[오를레앙/20150321] 로아르 지방의 성처녀, 오를레앙을 다녀오다 주말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선택장애를 불러일으키는 딜레마이다. 당일치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가고 싶은 곳’보다는 ‘가깝고 교통비가 덜 드는 곳’을 우선 조건으로 설정하게 되고,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할 날짜에 날씨 역시 많이 보게 된다. 비오는 날 홀로 거리를 걷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세찬 바람이 빗방울을 튀길 때의 여행이란 유쾌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쾰른과 암스테르담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를레앙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선정이 된 주말 여행지이다. 지난 주 주말에는 비가 오는 지역이 상당히 많았고, 루앙과 오를레앙 중에 갈등하던 내 마음은 루앙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자마자 바로 오를레앙으로 기울어버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를레앙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