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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쾰른/20150622-28] 두 번째 작별 인사와 배웅 마지막 날,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쾰른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인 리하르츠-발라프 미술관이었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쾰른을 방문했을 때 미처 방문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발라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이 길어서 편의상 발라프 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리하르츠-발라프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이름인 것이, 그도 그럴 것 없이 이 미술관을 있게 한 사람들이 바로 리하르츠와 발라프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던 두 사람이 자신들의 수집품들을 쾰른 시에 기증하면서 이 미술관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번 방문했던 쾰른의 현대 미술관인 루드비히 미술관도 기증가의 이름을 따서 미술관 이름을 붙였는데 사례인데 발라프-리하르츠 박물관도 같은 사례라 할 .. 더보기
[쾰른/20150622-28] 두고옴으로써 받은 선물 쾰른에서 머물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라인 강 산책이다. 물론 대성당 구경을 꼽는 사람도 있지만, 대성당은 쾰른 체류의 매력이기 이전에 너무나도 기본적인 사항이자 도시 랜드마크 이기 때문에 제외하도록 한다. 내가 쾰른을 좋아하는 것은 대성당의 웅장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성당의 웅장함과 전형적인 도시적 구조 속에 또 다른 생기를 넣어주는 라인 강의 산책로가 있기 때문이다. 라인 강은 쾰른이라는 도시를 탄생시킨 탯줄이며, 도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한 혈관이자 힘줄이다. 쾰른을 칭할 때 '라인 강 유역의 거대한 대성당 도시' 혹은 '라인 강의 쾰른'이라는 어구를 붙이는 것은 단순한 수식만이 목적인 것이 아니다. 라인 강은 웅장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처럼, 쾰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 .. 더보기
[본/20150622-28] 거장을 찾아 떠나 영혼을 만나다 쾰른은 라인 강 유람선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오랫동안 라인 강은 비옥한 토양을 위한 양분과 각종 인적 자원들을 실어 나르는 독일 내륙의 혈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철도를 비롯한 다른 교통망의 발달로 내륙 수운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인 강은 계속 남아 관광 자원으로써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름에는 쾰른에서 코블렌츠 까지 운영하는 관광 유람선이 인기인데, 이 노선을 타고 가다보면 라인 강 기슭에 남아있는 중세 시대의 성들과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로렐라이의 언덕도 이 코스에 끼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코블렌츠 까지 갈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던지라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지난 크리스마스 때 가려고 했었으나 가지 못한 도시인 본을 지난다고 .. 더보기
[쾰른/20150622-28] 도시의 척추와 심장을 가로지르다 쾰른은 교회가 많은 도시이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성 아포스텔렌 교회 외에도 11개, 총 12개의 로마네스크 양식 중세 교회가 쾰른에 존재한다. 물론 그 이전에는 더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있었지만 지난한 역사의 과정과 전쟁 속에서 많은 수가 불타 없어졌고, 지금 쾰른에 남아있는 교회는 웅장한 대성당을 제외하면 모두 12개이다. 그 험난한 역사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교회가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다. 그만큼 이곳이 카톨릭 신앙의 중심이자 종교의 힘이 강한 곳임을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다. 쾰른에 있는 교회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교회는 아데나워와 비잔티움 황녀 테오파노의 역사가 깃든 아포스텔렌 교회이지만, 아포스텔렌 교회 말고도 또 좋아하는 교회가 있다. 바로 쾰른 중앙역 북쪽에 위치한.. 더보기
[쾰른/20150622-28] 도심 속의 카오스, 시간이 한데 모여 엉켰을 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라 하면 지난번에는 못 이룬 ‘도보 여행’을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걸어서 쾰른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유적지들을 방문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취였다. 일단 날씨가 개자마자 내가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바로 노이어마크트(Neuemarkt)이다. 영어로 치면 ‘뉴 마켓(New Market)’으로 번역되는 노이어마크트는 쾰른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쉴더가세와 연결된 쾰른의 대표적인 상점가이며, 동시에 내가 지난 크리스마스 방학 때 머문 숙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랬던 지라 그 때 매일같이 노이어마크트와 주변을 둘러보며 산책을 하는 것이 여행 중의 일과로 자리 잡았었다. 숙소에서 시내나 대성당 쪽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노이어마크트를 거쳐야만.. 더보기
[뮌스터/20150622-28] 서늘함의 형태로 만든 도시, 비, 교회, 그리고 자전거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서늘한 쾰른의 첫날을 보낸 다음 날, 나는 곧장 역으로 가서 뮌스터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중세사나 건축 관련해서 가장 볼 것이 많은 곳이 독일 남부에서는 뉘른베르크고 북부는 뮌스터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뮌스터는 쾰른보다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와 니더작센 주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이다. 기차로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본래 뮌스터라는 말 자체가 주교가 지배하는 ‘주교좌’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지명이 여러 군데 존재하는 지라 뮌스터를 표기할 때는 베스트팔렌(Westfalen) 지방의 이니셜인 ‘W’를 병기한다. 허나 그 수많은 뮌스터들 중에서 뮌스터라는 고유명사가 아예 도시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그만큼 구교 카톨릭의 .. 더보기
[쾰른/20150622-28] 재회, 회색의 고딕 도시 “쾰른은 음울한 도시였는데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독일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도시를 엉망으로 설계할 수도 있으며, 쾰른이 특히 그렇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미국의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의 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라인 강 주변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특히나 겨울의 날씨는 음울하고 하늘엔 항상 우중충한 회색이 끼어있다. 여기에 거대한 대성당의 모습은 뾰족하게 치솟은 고딕 양식의 첨탑 때문인지 이 같은 날씨의 음울한 무드에 장중함을 더해준다. 프랑스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 어두운 숲들이 가득 시야를 매운 차창을 구경하다보면 금방 쾰른 중앙역에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귀에 들려온다. 그리고 수많은 기차가.. 더보기
[뮌헨/20150417-20150503] "남기고" 여행을 끝내다 뮌헨은 대도시이지만 녹지 공간이 상당히 잘 조성되어 있는 도시이다. 과거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던 만큼 궁전과 왕실 정원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는데,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녹지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력 가문은 바이에른의 왕가이던 비텔스바흐 가문인데, 그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씨씨가 이 가문 출신이다. 그리고 씨씨의 사촌이 바이에른의 마지막 왕이자 ‘백조의 호수’의 무대가 되는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건설로 유명해진 루드비히 왕이다. 흔히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꽤 상반된 편인데, 하나는 기계와 각종 공업으로 유명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목가적이고 동화책 같은 풍경으로 나라 전체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 절반만 맞는 .. 더보기
[뮌헨/20150417-20150503] 가장 촌스럽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것 유난히도 아쉬움이 남는 도시, 뮌헨. 뮌헨은 정말로 큰 아쉬움이 가득 남은 도시이다. 물론 다른 도시나 지역에서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카를스루에, 바덴바덴,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이미 갔다 온 도시들도 못 본 곳이 너무 많아서 아쉽고, 울름, 아우크스부르크, 로텐부르크, 바이로이트 등 못 간 도시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뮌헨에 대한 아쉬움은 누군가를 붙잡고 길게 하소연을 하고 싶을 정도로 크다. 뮌헨은 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도착한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파김치가 되어 뻗어버렸고, 둘째 날은 노동절이었고, 나머지 이틀은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다. 볼 게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없는 뮌헨에 대한 경험이.. 더보기
[뉘른베르크/20150417-20150503] 성벽에서 밤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낼 때 뉘른베르크의 정취를 더해주는 것은 역시 성벽이다. 구시가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벽은 중세의 느낌을 한껏 풍기면서, 동시에 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가 지닌 고전적이면서 동화 같은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11세기 즈음에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해 이후 조금씩 변화하면서 뉘른베르크를 보호하는 갑옷의 역할을 해왔다가,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 지금의 성벽이다. 성벽은 지난한 역사 속에서 꾸준히 뉘른베르크를 보호해준 갑옷이자 방탄조끼이며, 동시에 이제는 역사적 아름다움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상징물이다. 뉘른베르크를 떠나기 전, 여전히 보지 못한 것들과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꼭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보기